7월 21일 월요일
편지 글. 밖에 있다 3, 4시가 되면 이젠 외롭습니다. 아침8시쯤 밖을 나와 방향을 잡아 걷습니다. 가면서 일반 상점들이나 주택들이 별 것 없이 나옵니다. 그래도 계속 걷습니다. 오랫동안 걸으면 가끔 신기한 것들이 나오게 되지요. 멋진 강 일 때도 있고, 이쁜 집 일 때도 있고, 사이코 같은 종교건물도 있습니다.
계속해서 걷습니다. 그러다보면 12시가 안되어서 걷는게 너무 힘들어집니다. 무엇을 사먹을 때도 있고 어떤 경우엔 주위에 그런 것들 조차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 곳이라면 주유소가 나오는데 그곳 편의점에서 끼니를 사먹습니다. 다리를 한참 쉬게 하면 다음엔 방향을 틀어 돌아오는 길을 계속합니다. 차들만 다니는 도로가 나오기도 해서 돌아오고, 지친 마음에 돌아오기도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시간이 때론 더 짧게, 때론 더 길게 걸려 도심으로 돌아옵니다. 3, 4시가 되면 외로워집니다. Mp3의 막다른 건전지 표시를 확인하곤 듣던 음악도 이내 꺼버립니다. 노래는 꺼졌어도 듣던 노래를 속으로 흥얼거려 보지만 잘 흥얼거릴 수 없는 기분으로 이내 돌아와 버립니다. 그래서 결국 생각들을 잊으려 다리를 더 기계적으로 움직입니다. 외로움을 취한 기분으로 바꾸려 해보아도, 항상 속이 뜨거워 질 때쯤이면 정신도 풀리고 외로움은 더해집니다. 졸려도 발 뻗고 편히 기댈 곳이 없습니다. 자전거를 벨기에 리에주Liege에 놔두고 와서, 많이 걷다 보니 발이 트는 현상이 부쩍 심해졌습니다. 양말도 없이 맨발을 맨공기에 계속 놔두게 되니 더 악화되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닿으면 아픕니다. 특히 발바닥과 신발바닥이 만나는 부분은 걷기가 너무 아플 정도로 닿으면 아픕니다. 제 판단으론 로션 같은 크림이 필요할 것 같은데, 살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도 걷는 것이 좋습니다. 아빠는 나의 느린 시간 배분에 못마땅해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안내지 등에 소개되는 것에 관심을 갖는: 많은 이들이 본 것을 보는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 되고 싶진 않습니다. 무의미해 보이는 길을 걷다 보면 지도엔 인쇄되어있지 않은 장소나 이벤트들을 보게 됩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그리스 정교의 매우 독특한 외관의 건물이라든가, 어린 아이들을 위한 축제, 발코니를 나름대로 꾸며놓은 다양한 집들이나, 공사장들, 문이 잠긴 교회, 시계가 가지 않는 시계탑시계 등 여러 가지 지도에서 보이지 않는 장소들을 목격 합니다. 그런 작은 것들을 보면, 아기자기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 작은 두 손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 아침엔 저번에 바흐 콘서트를 보았던 토마스 교회엘 다시 들렀습니다. 오르간 연주가 그리워 갔지요. 마침 한 분이 오르간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콘서트가 아니라 연습이라 일정 부분을 연속해서 반복하기도 하고 매끄럽게 이어나가기도 했습니다. 오르간을 콘서트가 아닌, 연습연주 하는 것을 들으니 기분과 인상이 또 새롭더군요. 부분을 계속 반복하는 소리가 친근하고, 더 인간이 연주하는 악기 소리로 들리게 되어 좋았습니다.
오르간 소리는, 외관으로 파이프가 보이는 것만큼, 파이프를 탄 소리가 날 소리로 들리는 느낌이 좋습니다. 인위적인 꾸밈 없이 소리는 파이프를 타고 <공기를 통해 나의 귀에> 들립니다. 그래서 악기 연주가 멋진 것이겠지요. 소리를 만들고 아름다운 느낌을 전해 주니까요. 나침판도 이렇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서 몇 바퀴를 돌아도 나침반은 북쪽인 곳을 북쪽이라고 가르키지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렇게 되는 겁니다. 오늘 길을 가다 아이들 장난감 파는 가게엘 들려보았습니다. 그곳에서 연이랑 바람개비가 나온 카탈로그를 챙겨나왔습니다. 나중에 쉴 때야 자세히 보았는데 연이랑 바람개비도 좋습니다. 세상에서 만들어진 바람으로 연은 속도를 얻고, 방향을 잡히게 되지 않습니까. 부는 바람을 타는 연과 바람개비의 모양이 좋더랍니다.
저번에 슬렁슬렁 보았던 고흐가 테오에게 쓴 편지중의 한 구절이 많이 생각에 남습니다. 개인적으로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 그림을 별 좋아하지 않는데, 고흐가 테오에게 그 그림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기 손으로 일구어낸 감자를 먹는 사람들”을 그리고 싶었다고요. 자기가 뿌린 씨와 보살핌을 둘러 앉아 먹는 사람들.
그럴 듯하게 주장하고 믿고 발견한 척 해대는 사람들이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그 내용은 얼마만큼이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인지 의심이 가게 합니다. 대부분 ‘아’라고 하면 ‘아’고 ‘어’라고 하면 ‘어’인 것들이 되어선 않되겠습니다.
늦은 밤이 되지 않은 시간에 이렇게 생각을 써내려 가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일기를 지금같이 편지 글로 쓴 것은 처음인데, 좋은 것 같군요. 이 글도 둘이 나눈다고 생각하니 더 나의 마음을 드러내 설명하려는 글이 되는 것 같습니다. “share”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나눔, 공유에 대한 ‘나눈다’라는 생각이 전과 달라졌습니다. 너 하나 나 하나가 아닌, 나 하나 있고 너 하나 없더라도(이 반대 역시) 나눔은 가능하다라는 생각을 새로 하게 됩니다.
LEIPZIG, GERMA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