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7일 일요일
오늘 마지막 1달의 버스 여행을 다시 시작하는 날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나의 불찰로 버스를 놓치고 만 것이다. 나는 돌아오는 길 내내 멍청이, 바보 같은 나를 탓했다.
그래서 다시 숙소로 체크인을 하고 들어와 벌러덩 누워버렸다. 지금쯤이면 버스를 타고 네덜란드로 가는 중이어야 하는데,,,하며. 어쨌든 나는 ‘남은 날’을 보내야 한다. 여행을 두달동안 하면서 새로운 볼거리를 보는 일은 지루해져 있다. 게다가 요새 프랑스 남부를 계속 여행하면서 바다에서 재밌게 놀아, 이젠 ‘노는 일’이 더 즐겁다. 헌데 도시에서’남은 날-더해진 날’이 생겨버리다니. 카메라도, 지갑도, 안경도, 뭐도 하나도 소지하지 않은 채로 나갔다. 오로지 10유로와 동전 몇을 주머니에 담아 훌훌 나간 것이다. 아무것도 맨 것이 없으니 조금 허전했다. 나가니 별 할 것이 없었다. 사람들을 마냥 구경하고 있기도 심심했다. 그래서 숙소로 들어가 보조 가방에 들어있던 것들을 모조리 빼고는 연필과 지우개, 스케치북, 생수 병을 들고 나갔다. 공원까지 가는 길이 즐거웠다. 보조가방을 가볍게 매고 스케치북을 옆에 끼고 생수 병을 달랑달랑 들고 공원으로-. 마침 공원 한 구석에서 사람들이 몇 모여 체스 판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세잔의 그림이 문득 생각났다. 그래서일 것인데 그 장면을 그리고 싶어졌다.그 놀이판을 마주보고, 벤치에 기대어 그들을 그렸다. 길가던 꼬마가, 청년이 관심을 가져주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어른과 아이의 대결에 대해 그리고 싶었다.
그림을 그리고 앉아 있은지 한 시간쯤 됐을까. 게임 판에 있던 빨간 옷을 입은 남자가 다가왔다. 그림에 대해 칭찬을 해 주고 우리는 몇 마디 주고받았다. 그 사람은 아주 마른 중국 혈통을 가진 사람인데 여기서 태어났단다. 그래서 중국말을 못한다고. 그리고 다른 누이들은 유럽 다른 나라들에 각각 살고 있다 했다. 그러고는 나의 그림을 친구들에게 보여줘도 되냐고 물었고 나는 오히려 흥쾌히 대답했다. 친구들의 반응은 예외였다. 그들은 나의 그림보다 진행중인 체스를 더 좋아했다. 다시 우리는 내가 앉아있었던 벤치로 돌아왔고 그 중국인은 이런저런 자신에 대한 얘기, 이 마을에 대한 얘기를 했다. 그러더니 게임 판에 있었던 한 뚱뚱이 남자가 다가왔다. 남자가 중국인에게 장난 걸며 슬렁슬렁 오니, 그 중국인은 그가 호모라고 재빨리 귀띔해 주었다.
그리곤 그 뚱뚱이는 중국인에게 장난을 쳐댔다. 그러다 우리 셋은 서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주고받았다. 그 호모(이름은 로비)는 “자기는 먹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먹을 때 행복하다. 자기는 ‘개’가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개는 단순하게 산다. 단순한 것이 최선이다” 등의 주장을 했다. 그는 플라톤을 제일 좋아한다고 하며 들어보지 못한 몇 철학자들의 이름을 말했다. 그런 얘기 중에 옆 벤치에서 아까부터 책을 읽고 있던 학생이 끼어들었다. 나는 재미있어지는 상황에 같이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땅에 앉은 한 이국학생과 땅에 무거운 몸을 기대어 드러누운 홀란드 호모. 한국에서 온 뭣 모르는 학생과, 말이 많은 편은 아닌 중국인 한 명으로 서로를 마주보며 둘러앉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많은 얘기를 했다. 얘기는 호모 ‘로비’를 중심으로 돌아갔는데(그는 말을 쉼 없이 하고, 때문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단순함이 최선이라는 게 그 요지였다. 신이고 뭐고, 똑똑하건, 힘이 있건 간에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면 땡이란다. 죽으면 끝인데 맞는 게 뭐고 틀리는 게 어딨냐는 주장이었다. 종교, 아담, 이브, 토라(?), 산타클로스, 코카콜라, 추수감사절과 정치적인 측면 등에 대한 얘기를 했다. 사실 얘기 중 설득력이 별 없는 얘기도 그는 강력하게 주장했는데 어쨌든 그 이야기가 벌어지는 광경이 좋았던 나는 그 상황이 즐거웠다. 얘기는 밤이 늦도록 길 바닥에 눕고, 앉아 계속되었다. 나는 나와 다르게 생긴 사람들과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과, 그 마을 사람이 밤하늘 밑, 길바닥에서 한껏 소리 내며 토론하는 그 광경이 사실 너무 좋았다. 아마 바로 이런 광경이 어느 시대건 변하지 않는 광경일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 그 광경은 하늘의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광경에 대응할 만한, 견줄 만한 광경일 것이다.
나와 졸리는 같은 호스텔에 묵는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고, 가는 길을 함께 했다. 시간은 11시가 넘었을 때였다.
MONTPELLIER, FRANCE